산돌 장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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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행이 불러온 유익 삼상 30:7-17 (2010.2.21) 인쇄 E-mail
오 석득 목사 에 의해서 작성   
월요일, 22 2월 2010 02:26

자, 여러분 잠간 눈을 감아 보시길 바랍니다.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솔직하게 여러분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세요. “야! 아무게야, 너는 네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착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자,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에게 어떤 대답을 해 주던가요? 착하다고 대답을 들은 사람이 있나요? 아마 착하다는 대답을 들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눈을 뜨세요.
그런데 사람이 처음부터 이렇게 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창조해 주셨을 때는 진짜 착하고 선했습니다. 하는 짓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착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짓자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는 고집과 아집이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반항하며 사는 반항아가 된 것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일은 누워서 죽먹기 같이 쉬웠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착한 모습으로 살려고 하면 무던히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겨우 한 가지의 착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악한 마음은 갖지 않으려 해도 마음에서 솔솔 올라옵니다. 어떻게 하면 꾀를 부릴까...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잘 해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내 이익만 챙길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을까...아이디어가 막 생깁니다. 이게 바로 죄를 지은 인간들의 현 주소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죄를 지은 인간의 원래 모습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비슷비슷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마디로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착하게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며칠 전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한국에서 또 일어났습니다. 좋은 일은 가뭄에 콩나듯이 일어나는데 악한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학생이면 어린 아이들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천진난만해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런 악이 나오는지 경악할 노릇입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자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특별한 행사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했던 것 같은데 그 계획이 너무 악한 계획이었습니다. 수십명의 후배 남학생이나 여학생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그들의 옷을 홀라당 벗긴 것입니다. 그리고 두둘겨 패기도 하고 자기들이 하라는 대로 시키며 괴롭혔습니다. 이 광경이 비데오에 찍혀 인터넷 상에 공개되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열살 조금 넘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그런 악한 일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것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선보다 악을 행하기가 쉬운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악의 창고를 가지고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착한 일을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대로 살아오셨나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각자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들이 있습니다.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벌기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기 위해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기 위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위대해 보일려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마지못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 어떤 쪽에 속하는 사람인가요? 왜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알고 살고 있나요? 아니면 그저 목숨이 붙어있으니까 할 수 없이 살고 있나요? 아직 자기가 왜 사는지 이유와 목적도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이 가운데 있다면 이 시간을 통해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왜 예수 믿는 자들이 지음 받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사는 목적도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다고 선한일, 선한일 하며 떠들고 다니는 것이 선한 일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께 영광, 영광하며 입으로만 떠들며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며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며 사는 것이 올바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면 그는 그의 삶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선행을 베풀자 더 큰 유익이 다윗에게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작은 선행이라도 그냥 두시지 않고 다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선을 행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도로 받기 위한 목적으로서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선을 행한 자에게 보상해 주시지만 보상이 목적이 된다면 그 선행은 이미 선행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보시길 바랍니다. 선을 행할 때 놀부의 마음을 가지고 하면 안됩니다. 흥부는 분명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발견하여 그 제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부러진 다리를 싸매주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을 행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제비가 고마워서 호박씨를 물어다 준 것입니다. 그리고 흥부의 선한 행동으로 인하여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제비의 다리만 부러뜨리고 고쳐 주면 흥부 같이 금과 보석이 들은 호박씨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상 받기 위한 선을 행하려고 악을 창출해 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이 잘못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 그렇다면 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요? 우리가 선을 행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10절을 보며,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집이라든지, 차, 그릇, 냄비, 키, 그리고 수 많은 물건들이 우리 손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물건들마다 만들어진 목적이 있기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기에 그 물건들은 만들어진 목적에 합당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물건들이 각자 만들어진 목적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집에 들어갈려고 하는데 키가 일을 하지 못해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키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 키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리려야 합니다. 지음 받은 물건은 지음 받은 목적에 합당하게 쓰여야 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 날 밤에 눈이 몹시 많이 왔습니다. 아마 몇십년만에 여기 남쪽 지역에 이렇게 많은 눈이 온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요 기도회도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밖에는 눈이 소복이 쌓이고 날씨는 몹시 추웠습니다. 그런데 밤 10시쯤 되어 집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쏴~ 어디에서 물 새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에 무엇이 원인인지 찾기 위해 머리가 정신 없이 회전을 합니다. 빙글빙글 돕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혹시 너무 추워서 물 파이프가 터진 것은 아닌가? 집 밑에 있는 파이프가 터진 것일까? 아니면 땅 속에 있는 파이프가 터진 것일까? 만약 파이프가 터졌다면 이 추위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물값도 만만치 않게 나올 텐데...라는 생각이 잠깐동안 교체합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옷을 두텁게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 본 결과 감사하게도 물파이프가 터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쏴~하고 나던 소리는 집 뒤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몇년 전에 고장이 나서 물이 새지 않도록 부착 시키는 장치를 사다 끼어 놓았는데 이번 강 추위로 인해 고장이 나서 물이 잠겨지지 않았서 물이 줄줄새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도 물 파이프가 터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날 당장 Lowe’s에 가서 다른 것으로 사다 끼웠습니다. 그리고 고장난 부품을 계속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쓰레기통 버렸을까요? 쓰레기통에 당장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만들어진 목적대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또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은 짠 맛을 내야 제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소금이 짠 맛을 내지 못한다면 소금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쓸모가 없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존재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창조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선한 일에 쓰임 받지 못한다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항상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일들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꼭 이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한 선행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마치 부메랑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부메랑이란 낫 같이 생겼는데 그것을 던지면 던진 사람에게 돌아 오는 특별한 무기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4).
다윗은 아말렉 군사들을 추적하러 가는 도중에 길에 버려져서 다 죽어가는 애굽 청년 하나를 만났습니다. 다윗과 군사들은 병들어 쓸모 없는 자이지만 그리고 바쁜 중에도 그를 불쌍히 여기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겨 주었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이 베푼 선한 손길을 통하여 그 청년으로부터 그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아말렉군사들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위치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으로부터 아말렉군사들의 행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을 추적하여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도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그들에게 선을 베풀었습니다. 지친 나그네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소도 잡았습니다. 빵도 구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쉬어갈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착한 일을 통하여 천사를 대접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년 이맘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천사를 대접한 후에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목적대로 쓰임 받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미국 메릴랜드의 한 마을에 남루한 복장의 고학생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책을 파는 외판원이었는데 그 학생은 더위와 배고픔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입구의 허름한 집을 방문했는데 그때 그 집에서 한 소녀가 그 학생을 맞으며,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 그래서 책을 살 수가 없어요.” 그 학생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시원한 우유 한 잔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는 쟁반에 두잔의 우유를 가져와 정성껏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고학생은 소녀의 친절에 감동하며 자기 수첩에 그녀의 이름을 달라고 하여 적어두었습니다. 20여년 후 메릴랜드병원에 한 여성 중환자가 실려왔습니다. 병원장 하워드 켈리 박사는 의사들을 총동원해 환자를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살아난 여인은 1만 달러가 넘는 청구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청구서 뒤에는 병원장의 짤막한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할렐루야! 아주 작은 선행일지라도 반드시 보상받게 됩니다. 만약 이곳에 사는 동안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행을 하다 지치지 말라고 합니다. 선행을 하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행은 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행은 반드시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보상해 주십니다. 왜 우리가 선행을 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자기가 행한 선행이 다시 돌아 온다는 법칙을 모른다면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선한일을 하는 것 같이 흉내는 낼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선은 행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보통 때 선한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미국의 제25대 대총령이었던 맥킨리 대통령이 외무부 장관을 뽑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런데 두 사람의 후보가 올라 온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이력서를 보니 자격이나 구비 조건들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맥킨리 대통령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던 동기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주저없이 뽑게 된 동기는 아주 옛날로 돌아갑니다. 맥킨리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기 이전에 경험했던 일입니다. 그가 하루는 만원이 된 전차를 타게 되었는데 마지막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앉게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나이가 많이드신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들고 전차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빈자리가 있는가 두리번거리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힘들게 들어가면서 바로 지금 외무부 장관의 후보로 올라와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앞에 가서 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신문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나이든 할머니를 못본 체하고 그냥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도 미래의 대통령이 될 맥킨리 씨가 전차에 같이 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짐을 든 할머니가 이제 맥킨리씨 앞으로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서 자기 자리를 양보해 주었습니다.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냥 앉아있었던 그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누가 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행동이, 그리고 그 일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그 사람의 출세와 명예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맥킨리 대통령은 그 수년 전에 전차 안에서 본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고는 그 사람이 어떤 인격과 양심을 가진자인지 알므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상대방 사람을 외무부 장관으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크고 작은 일들을 다 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물은 나무와 풀을 푸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는 선한 일들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열심을 다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맞도록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열매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오게 되므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도구로 쓰임 받고자 마음에 결단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