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용서하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 왕을 용서하는 장면을 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아무 죄도 없는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산과 들로 쫒아 다니는 것이 그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 당시에 사울에게 잡혔다면 사울은 그를 분명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보호해 주셨으며 사울왕의 손에 죽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자기를 그렇게 못살게 굴며 죽이려던 사울을 다윗이 용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아니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도록 맡겨 주셨는데도 그는 죽이지 않고 용서해 줄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윗이 미움이라는 불이 마음에 타오르지 못하도록 용서라는 물로 즉시 껐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다윗이 사울 왕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속에서 용서를 통하여 미움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원수 같은 사람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각 사람의 행위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선한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잠언서에서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22:4)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 선으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찬양의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선한 일 할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악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잠22:4). 악을 행하는 자에게 악으로 만족할 만큼 갚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악이 그냥 사라지고 없어진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선이나 악이나 어떤 것을 행하든지 그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늘 하나님께 선한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23절과 24절을 보세요. 다윗은 분명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사울의 생명을 부쳐 주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을 자기의 손으로 죽이는 일까지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 준 것 같이 하나님이 자기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보호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뿌린 씨앗은 자기가 거두어야 하는 법칙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농부가 염소와 당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일을 많이 하는 당나귀에게만 맛있는 음식을 주고 일을 하지않고 빈둥빈둥 노는 염소에게는 맛없는 음식만 주었습니다.염소는 상당히 주인에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불만을 품은 염소가 당나귀에게 얉은 꽤를 생각해 내어 말해 주었습니다."너는 종일 연자방아를 돌리고, 또 무거운 짐을 지면서 잠시도 쉬지 못하니 참 안됐구나! 그러니 일부러 몸에 상처를 조금 내어 아픈 척하면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야!” 그래서 당나귀는 염소의 말을 듣고 몸에 가벼운 상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핑게로 일어나지 않고 누워 있었습니다.갑자기 일 잘하던 당나귀가 드러눕자 주인은 걱정이 되어 수의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수의사는 당나귀를 열심히 진찰한 후 농부에게 이렇게 처방을 내려 주었습니다. 당나귀가 영양실조로 인해 허약해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니 염소의 간을 삶아 먹이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고 갔습니다. 농부는 당장 염소를 잡아 간을 구워 당나귀에게 먹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소는 당나귀를 헤치려고 간계를 꾸미고 악을 행했지만 염소의 악한 꾀는 당나귀에게 가지 않고 자신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악을 행하든 선을 행하든 그 보응은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잘못하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이 쉽게 용서 되던가요? 아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용서가 되지 않아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그런 사람을 어떻게 놀려 줄까, 어떻게 원수를 갚아 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줄 수 있을까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만의 하나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이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은 쓰레기통에 버리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수를 갚는다 해도 나중에 그 열매가 자신에게 돌아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 마음에 그 만큼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미워지면 자신의 마음에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꼬지를 하려고 하면 자신에게 돌아 오는 해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려고 했던 것 보다 더 크게 돌아 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용서란 남을 위해서 하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보호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우리는 요셉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어린 시절부터 파란만장했습니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자기 인생이 힘들게 된 것이 아버지가 자기에게 심부름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살았다면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았기에 자기의 인생이 불행해 졌다고 미워하며 원수를 갚고자 계획 세우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절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을 용서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애굽의 총리대신이라는 보상을 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애굽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 나라로 형성하는 기초로 요셉이 쓰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도 선과 악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을 이루는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특히 자신에게 해롭게 하고 곤경에 빠드리는 사람들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다윗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원수 같은 사울도 용서할 수 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용서하며 좋은 행동의 씨앗을 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좋은 열매들을 허락해 주시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중국 영화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특히 이소룡씨가 나와 나쁜 자들을 시원하게 두둘겨 패주는 것을 보면 마음까지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중국 영화를 보다 보면 이야기의 내용들이 비슷비슷합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시대에 원수가 되어 서로 싸우다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식들 대까지 원수가 되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는 것이 보통 중국 영화입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하여 마침내 원수를 갚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싸움은 또 다시 다음 세대로 넘어가 원수를 갚기 위해 싸웁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원수를 갚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비극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끝까지 자기의 손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20절을 보면,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일을 인간에게 맡겨 주시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원수 갚는 일을 공적인 정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원수 갚는 일을 개인에게 맡겨 놓으면 공평하지 않게 됩니다. 감정대로 개인의 편리대로 해석하며 자기의 기준으로 원수를 갚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작부터 자기가 원하는대로 원수를 갚으려 하므로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이 너무 제물을 잘 드려서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판단과 생각의 범위 안에서 아벨이 자기의 원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자기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므로 끊임없이 전쟁이 끝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이 사람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재산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이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자기 몸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도 자기가 죽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죄가 되기 때문입다. 엄연히 하나님의 재산을 침해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또한 원수를 자신이 갚으려고 하다 보니 그곳에서 문제가 더 크게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수를 갚을 때까지 늘 불안합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이 뼈를 삭이는 것 같은 병이 생깁니다. 마음에 화병이 생깁니다. 소화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근심 걱정이 생기기에 늘 불안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찾아 옵니다. 어떤 교회 여집사가 목사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는 웬일인지 도무지 소화가 안되고 심한 신경쇠약과 불면증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목사님은 여집사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혹시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나요?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제부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그를 귀하게 생각하며 위해 기도하세요. 그러면 집사님의 문제는 다 해결될 것입니다.” 여집사는 펄쩍 뛰면서, "아니 내가 그런 벼락 맞아 죽을 놈을 위해 기도를 해요? 난 절대 용서 못해요.” "그게 누굽니까?" "도망간 남편입니다.자식까지 다 낳고서 나를 버리고 첩하고 나간 지가 7년이 되어도 소식도 없고 우리를 돌봐 주지도 않고 생활비도 준 적이 전혀 없어요. 그 놈이 얼마나 미운지 몰라요. 지금도 그 놈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구요.” 목사는 여집사님에게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집사님께서 소화도 안되고 잠이 안오고 신경쇠약에 걸려 고생하는 원인은 바로 남편에 대한 미움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마음속으로 남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워하는 마귀가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올 뿐만 아니라 남편의 마음속에 역사한 마귀도 물러가고 집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남편을 위해 기도해 보세요.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먼저 기도하세요 라고 권해서 보냈습니다. 여집사는 목사가 권하는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여집사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잠도 잘 오고 소화도 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에 뜻밖에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웬일인지 당신이 나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 혹 나를 미워했다면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1년에 천만원씩 쳐서 칠천만원을 보내 줄 것이니 제발 미워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여집사는 칠천만원을 받고 너무너무 기뻐서 편지 하기를 당신이 보내준 돈은 감사히 잘 받았으며 과거의 잘못은 다 용서 했으니 제발 예수 믿고 새 사람 되기를 기도한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날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이제는 첩과의 생활을 다 청산하고 당신에게로 돌아가겠으니 지난 죄를 용서하고 나를 맞아달라'는 것입니다.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성도 여러분! 아직 마음 속에 미움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나요? 이제 원수를 대신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미워하고 원수를 갚다 보면 쉬지 않고 계속 되풀이 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한이 맺히는 것이 있다면 마음에다 쓰지 마시고 모래 위에다 쓰시길 바랍니다. 즉 모래 위에다 쓰라는 말은 빨리 잊고 오래 기억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래 위에 글을 써 놓으면 물이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다 지워져 버립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것은 바위에 새겨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입은 것은 절대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 다 같이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할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도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선지자의 대우를 받고 싶으면 상대방을 선지자 같이 대우를 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으면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고 싶으면 그 사람을 그 만큼 섬겨 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원리이며 원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리로부터 찬양과 존귀함을 받으시기 이전에 우리를 먼저 섬겨 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신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가지 섬겨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이 우주 만물의 주권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이 땅위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나, 땅 아래 있는 존재들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지막 날 심판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렇게 높여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를 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가 그 분을 섬길 차례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 살던 사람입니다. 그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완성된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거나 율법책만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귀중한 존재라면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울 왕이 비록 다윗에게 나쁘게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먼저 소중한 존재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사울의 생명을 헤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사울은 다윗의 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 같이 귀하게 대우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왕으로 대우해 주자 나중에 다윗은 자기도 왕으로서 대우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먼저 대우해 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먼저 대우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다른 사람을 먼저 귀한 존재로 대우할 때 자기도 그러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귀하게 대우하기를 원치 않는 것일까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낮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멋진 사람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귀하게 대우할 때 자신에게도 유익이 돌아 옵니다. 아브라함은 99세 먹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집 옆으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해서 귀한 음식으로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지나가는 나그네로 알고 대접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우하기를 좋아하던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입니다. 히브리서13장 2절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자들이 있었느니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 받기를 원하나요? 그러면 그 사람들의 가치를 먼저 인정하며 존경하세요. 여러분이 그들로부터 소중한 존재 같이 대우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그러면 먼저 그들이 소중함을 인정하시며 그렇게 대우해 주세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만나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마시고 대우해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그러한 대우를 받게 되며 다른 사람들이 잘못을 할 때도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승리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